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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연극

[연극] The Wooden Circus (극단 칼로마토)

by 그리고아무말없었다 2022. 9. 29.

 

체코 인형극.
Karromato라는 1997년 프라하에서 설립된 인형극단이라고 한다.
19세기 전통 방식을 이용한 인형극이라고 하는데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이번에 관람한 The Wooden Circus의 경우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없이, 단순히 마리오네트 인형들로 서커스를 모사하는 공연이었다. 차례차례 다양한 인물들, 즉 인형들이 등장하고, 각 서커스 특징을 살린 공연들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마리오네트 공연이 처음이라 비교군은 없지만, 인형을 다루는 기술이 그리 정교하게 보이진 않았다. 인형들의 움직임은 좀 굼뜨고 둔했고, 동작이 꽤나 허술했달까. 하지만 인형의 움직임 그 자체는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니까 관절의 꺽임 방향이나 가동 형태가 진짜 생명체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인상?

이러니저러니해도 이 고전적인 외국 인형극은 인형들의 아우라만으로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매력이 있다.
얽히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게 많은 실을 단 인형들, 괴상하기도 하지만 나름의 디자인 감각이 드러나는 매력적인 이국성,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 끙끙거리며 인형을 다루고 목소리 연기도 하는 두 명의 인형술사의 모습이 정말 인간적이고 사랑스럽다. 아마 부부가 아닐까 짐작했는데, 오랜 시간 단련했을법한 그들의 합이 왠지 그런 관계가 아닐까 싶었다.


그들은 한 인형에 달린 수많은 실들을 서로 배분해서, 누구는 머리를 담당하고, 누구는 몸통을 담당하며 하나의 움직임을 표현한다. 그들도 인형과 함께 일종의 서커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하나의 인형을 둘이 나눠 조종하다가, 뒤에 숨겨놓은 다른 인형을 무대에 하나 추가하며 순식간에 하나씩 인형을 도맡기도 하고, 4개의 인형을 두 사람이 상황에 맞게 배분해가며 빠르게 손을 바꿔댄다.


서커스에는 사람도 등장하고, 동물도 등장했는데, 인상적인 것들은 모두 동물이었다. 

삶의 굴레를 표현하는 듯한 둥근 링에 매달린 원숭이가 등장한다. 장엄한 음악이 흐른다. 링에 매달린 원숭이는 손발이 묶인 채 공중곡예를 한다. 축 늘어진 팔다리와 우울한 표정, 사지가 묶인 원숭이는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자신을 관리하던 조련사까지 마구 잡아먹는 사자는 굉장히 재밌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사자는 입이 굉장히 크고, 그 입안에는 실제 인형들이 들어갈 수 있다. 이 사자는 조련이 잘 된 듯 행동 하다가도, 수가 틀리면 따지지 않고 아무나 마구 잡아먹는다. 사자가 모든 단원들을 잡아먹어 파행으로 끝나는 그런 서커스 이야기가 떠오르는 에피소드였다. 그러나 그런 사자의 특성은 단발적인 유머였고, 그 이야기가 네러티브로 활용되지 않은 건 조금 아쉬운 느낌.


마지막 무대는 4명의 소방관이 장식한다. 소방관이 서커스 공연의 말미에 배치 된다는 건 이색적인 관점이다. 많은 소동들을 마무리하는 존재로 공권력이 개입하는 걸까? 실제 그들은 자신이 가진 다양한 무기들로 무대에 남아있는 동물들과 사람을 윽박질러 쫒아낸다.
이들은 아코디언처럼 몸이 쭉쭉 늘어난다. 각각 늘어나는 타이밍을 달리하며 리드미컬한 박자를 만들어내는 게 해당 에피소드의 포인트. 몸의 형태가 변하는 4개의 인형을 다루는 게 아마 인형술사 입장에서는 제일 난이도가 있는 동작이었을텐데, 그런 기술적 측면 때문에 이 공연을 클라이막스에 배치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인형의 움직임이나 트릭은 그렇게 정교해 보이지 않았고, 그들의 이야기가 서커스로 묶기엔 조금 겉도는 느낌이 있어서 차라리 무엇이든 먹어대는 사자 이야기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잔혹극이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렇게 여겨진 이유가 있다.

옛날 외국 작품들에는 우리 정서와는 다른 이질적인 '잔혹함', '악취미'가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평범하고 단순한 서커스 인형극에도 그런 요소가 가득했다. 그리고 내겐 그게 제일 인상적이었다! 이런 아동극에도 모든 것들을 예쁘고, 귀엽게만 두질 못하는 악동기질이 유럽인들에게는 있는걸까?

캉캉춤을 추는 여인이 등장한다. 열심히 흥겨운 클래식에 맞춰 춤을 추는데 갑자기 몸의 마디들이 절단된다. 처음엔 한쪽 팔이 툭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관객도 놀라고, 당사자인 여인 인형도 왁하고 놀랜다. 곧이어 다른 쪽 팔도 마저 떨어진다. 그래도 여인은 춤을 멈추지 않는다. 없는 팔을 허둥대며 캉캉춤을 이어간다. 너무 기괴하다 싶었는데 이게 킬링포인트가 되는 유머였겠지? 곧 각 다리마저 툭툭 떨어져 여인은 몸통만 남는다.

둥뚱 떠다니는 몸통. 곧 여인의 머리가 그 몸통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몸통 밑퉁으로 뭔가가 톡 하고 떨어진다.  실에 매달린 바구니다. 바구니 안에는 작아진 그녀가 타고 있다! 순식간에 치마는 살짝 부풀기 시작한다. 몸통이 풍선이 된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몸을 열기구로 만들어 홀연히 타고 무대를 떠난다. 무대 아래엔 그녀의 잘려진 팔과 다리가 팔닥거리다가 지렁이처럼 꿈틀대며 무대에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