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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연극

[연극] 임금알 (극단 대학로극장)

by 그리고아무말없었다 2022. 10. 3.

군사정권시대 검열로 묻혀진 유행가들은 몇 개 아는데, 저항 연극은 처음이었다.

원작 희곡은 조선일보 신춘 당선작 <난조유사卵朝遺事>로 77년과 80년에 무대화를 시도했지만 무산되었고, 결국 <임금알>이라는 제목으로 수정되어 85년도에 초연을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도 많은 수정이 가해지며 못 다 표현한 게 많았다고...

어쨌든 당시 정치 상황을 맞춰 겨냥한 풍자, 그로인한 핍박들이 가장 큰 훈장으로 남은 이 공연이 2022년에 다시 등장했다.

 

대놓고 공연은 선언한다.

“작품의 본질인 저항의 색채를 많이 순화시키고, 풍자성과 유희성을 살려 관객이 재밌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작품의 본질은 희석시키고, 재밌고 웃기려고 노력했다고? 

나는 공연을 보기 전부터 선입견이 생겼는데, 보고나니 공연은 더 모호했고,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루는 시대는 얽기설기 뒤엏겨 있고, 21세기에 맞게 수정되었을 걸로 보이는 장면들은 계속 따로 논다. 박정희 정권의 군사들이 거리를 통제하는 그 세계에서 문재인이 조선시대 왕처럼 입고 고대시절 방식으로 왕위를 논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그림이지???

이 공연을 통해 원작을 대충 추론해보자면, 본 연극은 애초 날선 비판의 칼을 갈기위해 쓰여졌다기보다 시민들의 공분을 풀어주는 방식의 해학극이 아니었나 싶다.

왕위 계승의 명분을 얻기 위해, 즉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의 후계를 만들기 위해 주인공은 박으로 만든 알에 자신의 아이를 넣어 사람들을 속인다. 이후 이런 가짜 알은 모든 시민들이 저마다 자신이 왕이 될 명분이 있음을 증명하게 위해 지니는 일종이 명찰이 되고, 이후엔 가짜 왕을 몰아내기 위한 돌팔매로 변한다. 실제 공연에는 관객들이 극장측에서 나눠주는 공(알)을 가지고 왕을 꾸짓기 위해 무대의 주인공들에게 알을 던지는 시간이 있다.  종국에는 닭의 똥이 되는 알. 그 시절 이런 설계들에는 분명 카타르시스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무대 위의 그들에게 알을 던지는 행위는 왠지 서글픈 몸짓같다.

알을 낳아 자식을 왕으로 만든다는 발상을 하는 이 가난한 사기꾼은 결코 시대의 왕이 될 수 없는 밑바닥 존재임을 알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이미 날때부터 정해지는 권력의 수순을 점점 더 체감해가고 있기에. 가난하고 멍청하고 약한 이 사기꾼들이 허울뿐인 왕좌에 앉아 돌팔매를 맞고 있는 모습은 왠지 비극적이고 나아가 죄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알동의 어머니 역할이었던 이미숙 배우의 너무 사실적인 주름살, 비쩍 마른 얼굴과 큉한 눈에서 느껴지는 역경이나 피로함같은 것들이 너무나 현실적인 소시민으로 다가와 더 슬퍼보이는 장면이었다.

날선 칼날이 대상을 잃어버리고, 카타르시스가 비극으로 느껴지는 이 연극은 확실히 요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재밌는 연극이기도 했다. 섬세함이 없고 기괴하다고 했지만, 망가진 구조에 촘촘히 채워진 유머들은 꽤 타율이 높기 때문이다. 계속 피식피식 웃게 되는... 그러고보면 잘살아보세 노래가 나오는 와중 턱하고 치니 억하고 죽는 존재가 매트릭스 식의 추격전을 벌이며 아방궁을 논하는 이 괴상망측한 혼돈의 유니버스도 나름 트랜디한 세계관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