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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연극

연극 <자취> (극단 위로팩토리)

by 그리고아무말없었다 2023. 8. 5.

 

연극을 보기 전부터, 연극의 광고 문구 '생활밀착형 공포'라는 표현이 영 찜찜했다. 
내게, 어떤 콘텐츠에 붙는 '생활밀착형'이라는 수사는, '한국형'이라는 수사가 붙는 어떤 작품들의 느낌과 비슷하다.
그런 표현의 원류가 되었을 어떤 첫 작품은 분명 미덕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형'은 어떤 일반적인 클리세가 지독히 한국적인 특별한 정서와 접목되며 변형,패러디되는 재미가.
'생활밀착형'은 굉장히 미시적인 관찰로, 삶을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읽는 시각의 작품들이었겠지.
그러나 그런 문구가 유행이 되고, 변질되면서 저런 표현을 앞세우는 작품들은 왠지 기피하게 된다. 한국 콘텐츠 클리세를 게으르게 덮어쓰는 작품들,  규모와 투자가 빈곤한 작품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홍보문구로 보인달까?

이 연극을 '생활밀착형'이라고 연결지을 이유는 딱 하나다.
극의 무대가 실제 한국 청년들이 많이 사는 원룸 오피스텔로 한정된다는 것. 그 생활이 배경이라는 것.
그 외 사건의 전개나 대사들, 캐릭터, 연기톤, 주제...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생활과 '밀착'된 느낌은 받기가 어렵다.
근본적으로, 이 연극의 저 홍보문구 또한 무대와 내용의 '빈곤함'을 '생활밀착'이라는 친근한 느낌으로 뭉개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다.



첫 독립을 하고 원룸 하나를 얻은 미지라는 여성. 그녀에게는 경찰인 남친이 있다. 태훈.
아랫층에는 태훈의 후배 경찰 진헌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이 이렇게 모이게 된 건 전적으로 우연이었다.
그런데 미지와 태훈의 관계를 알게 된 진헌의 행동이 영 이상하다. 알고보니 진헌은 자신의 여자친구가 최근 실종되어 스스로 사건을 추적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런데 조사를 거듭할수록 진헌은 여자친구의 실종과 위층에 사는 미지가 연관되어 있다는 심증을 느낀다. 뺑소니 사건과 시체유기. 진헌은 이 두사람이 사건에 깊이 연류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연극은 이 이야기가 정상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정상적인 구조라면, 전반부는 이들의 상황과 캐릭터를 관객이 잘 이해할수 있게 기반을 다져 빌드업하고, 중,후반부로는 사건의 전말과 주제가 가감없이 펼쳐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연극은 시작하고 한참동안이나 딴소리를 해댄다.      
그 원룸 공간에는 알수없는 존재. 인간이 아닌 어떤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존재 때문에 미지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녀의 강박일까? 그러나 그 알수 없는 존재는 실제 관객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건 깜짝쇼로 연출되고, 그 순간이 관객의 호응과 반응도 제일 좋다.

줄거리에서 보여지듯, 미지는 '죄'를 가진 인물처럼 보이고, 그 원룸을 지배하는, 인간이 아닌 존재는 그 '흔적'일수는 있다.
그런데 그렇게 '상징'이나 '사건의 흔적'으로 느끼기엔, 전반부의 빌드업과 깜짝쇼, 그리고 이후 본격적인 사건이 너무 따로 논다. 시작하고 한동안 공들여 고조시키는 원룸에 사는 유령이라는 설정은, 그 나름의 이야기가 있고, 흐름을 통해 예상하게 하는 전망이 존재한다.  그런데 깜짝쇼 이후, 한참이나 늦게 '실제 사건'이 펼쳐지는데, 엄밀히 말해 분리된 다른 이야기고 정서고 연출이다. 
"갑자기 왜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지?"하는 의문은 극적인 구성을 위한 정교한 전략이 아니다.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연결고리'는 없고, 전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깜짝쇼'와 '그 존재'는 실제 사건이 진행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즉, 앞선 유령의 설정과 깜짝쇼들은 관객의 시선을 잡아두고, 흥미를 일으키기 위한 '유흥'이었다. 
그런데, 그게 어찌나 길고 (나름 이 연극 내에서는) 압도적인지, 극의 사건을 다 잡아 먹는다. 정작 극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화려한 축하 공연 뒤의 행사처럼 김이 푹푹 세고, 시간에 쫒기는 듯 황급한 전개가 진행된다. 
이 본격적인 이야기는 나름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고, 나름의 반전도 있다. 의미도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뭔갈 논하기엔 뼈대만 있다. 어떤 극적 정교함이나 개연성도 없이, 대충 얽기섥기 엮은 기시감만 슬쩍 던져놓았다. 

연극에서 공포효과를 위한 연출이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는데, 이 연극이 사용하는 연출은 꽤 영화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그건 영상연출의 점프컷, 플래쉬 효과 등의 응용처럼 보였는데, 극의 맥락엔 어찌되든, 구태의연하든 뭐든 그 자체는 꽤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존재하는 물질성, 관객석까지 확장되는 무대 등 연극만이 표현할 수 있는 특징이 확실히 이 장르와 꽤 어울리는 느낌.

그래서 보다 더 나은 공포연극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