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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시

[시] 새 인간

by 그리고아무말없었다 2021. 4. 4.

새 인간   / 김복희

Julian Alden Weir 줄리안 올덴 위어(1852-1919) : 빛과 색조의 활용이 두드러진 미국 초기 인상파 화가 (이하 그림 동일)


새 인간을 하나 사왔다 동묘앞 새 시장에서 새 인간을 판다는 소문을 들었다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새처럼 우는 법을 배운 새 인간이 동묘앞 새 시장에 매물로 나올 거라는 소식이었다 날개가 있지만 날 수 없고 곤충과는 달리 머리 가슴 배로 구성되지 아니 하였으며 다족류가 아니며 두 쌍의 팔 다리를 지녔고 갈퀴는 성장 환경에 따라 생겨날 수도 있고 영영 생기지 아니 할 수도 있고 큰 소리로 웃지 않으며 달리지도 않으며 먹어선 안 될 것들이 많아 병들기 쉽지만 청결한 잠자리를 유지해 주면 동반 인간의 반평생 가까이 살고 평생에 단 한 번 번식하며 때에 따라 번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인어를 키운다는 녀석들에게 보란 듯이 내 새 인간을 말해 주고 싶었으니까 나는

 

새 인간을 하나 사왔다 엊그제도 친구 하나가 산소공급기 청소를 깜빡하는 바람에 죽어버린 인어를 하수구에 흘려보내다가 주인집에서 정화조 청소를 하는 바람에 크게 곤욕을 치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음식물 쓰레기는 쓰레기봉투에 버리라는 이야기였다 새 인간을 사러 갈 것이라고 말하자 친구는 수조를 잘게 부숴 종이봉투에 넣는 중이라면서 세상에 그런 새 인간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었다 날지 않는 새 인간은 들어 본 적도 없고 새 인간이 날지 않는다면 기형이거나 날개 밑 근육을 절제했을 가능성이 높으니, 불법일 거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범법자가 되어서 도망쳐야 한다면, 자수를 결심할 때까지 자기 집에서 하루 이틀 정도는 재워 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집주인 때문에 새 인간은 출입 금지이니 새 인간 문제는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사랑하는 새 인간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나는

 

새 인간을 하나 사러 동묘앞에 걸어갔다 새 인간을 재울 깨끗한 잠자리를 만들어야 해서 아침은 굶고 현금을 준비해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흥정을 대비해 프로처럼 보이는 주머니가 많이 달린 조끼를 입고 목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의 새 인간

 

 

나의 새 인간이 되어 주세요 나는 인사말을 연습했다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새 인간의 잠든 모습이 보일 것만 같고 새 인간이 잠든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방바닥을 조용히 닦는 것 옷을 개키는 것 새 인간이 입을 잠옷을 수선하기 위해 돈을 벌러 나가는 것 그래서 무슨 일을 해야 새 인간과 더 오래 함께 있을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나는 동묘앞으로 향했다 새 인간이 혹시 날아가 버리려고 하면 어떡하나 업자가 날아다니는 새 인간을 데려와 버려서, 내가 그 새 인간이 마음에 들어버려서, 날아가 버릴 것을 알고도 새 인간과 살기로 결정해 버리면 그런 비극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처리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새 인간을 하나 사러 나의 새 인간을 가지러 두 시간을 걸어갔다

 

새 인간은 지금 팔랑거리며 잠들어 있다

생각보다 새 인간이 너무 가벼워서 놀라워하며 으깨질 것 같아서 두려워 벌벌 떨면서 새 인간을 받아들어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버스가 너무 흔들렸고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이 있어 새 인간이 깰까 봐 두려웠다 새 인간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어버릴까 봐 겨드랑이에 땀이 났다 새 인간이 그 냄새를 맡고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또 두려웠다 새 인간 이제 나의 새 인간

 

시체를 갖게 될까 봐 친구의 전화에도 문자로만 답하고 구덩이를 깊이 구덩이를 여러 개 파놓고 도망칠 구멍을 뚫어 가며 개미처럼 일하는데 조끼를 입은 집주인이 하나뿐인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나의 새 인간이 빛나고 있어서 두꺼비집이 자꾸 내려간다는 것이다 나의 새 인간이 잠들어 있다 이 조끼 가득히 날 수 있지만 나를 위해서 날지 않기로 마음먹고 죽고 싶지만 죽지 않기로 결심한 나만의 새 인간이 긴 얼굴을 돌리고 내가 잠든 동안에만 날개를 펼쳐 보이는 나는

 

얼음 속에는 물과 빛이 있고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이

 


김복희 시인은 인터뷰에서 새 인간에 관해 이렇게 얘기했다.

"새로운 내가 인간을 사랑한다는 뜻도, 내가 새로운 인간을 사랑한다는 뜻도, 인간이 내가 새로 이 사랑을 한다는 뜻도 가능하다.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된다."

작품의 시상은 크게 두가지가 읽힌다. 하나는 동음어를 통한 말장난이고, 다른 하나는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경험이다. (,)인간, 내가 잠든 동안에만 날개를 펼쳐 보이는 나는(flying, I am)...

 

무엇이든 가능한 형태로 쓰여졌다고 말하지만 본질적으로 겨냥된 의미는 새로운 나일 가능성이 크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 혹 내가 품고 있는 잠재력이 발현된 나. 시의 내용이 그것을 받아들인 후가 아니라, 사러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그 맥락이 두드러진다.

 

변화를 맞이하기 위해 점검해보는 과정, 그리고 그 기대감. 변화를 맞이하려는 개인의 가장 성스러운 순간은 그걸 준비하는 의례의 과정이다. 변화를 겪는 동안의 고통스러운 적응과정 보다, 변신 후 결과론적인 복기들보다 그 준비의 과정은 훨씬 흥미롭다. 경견한 삶의 점검들과 이상을 통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내가 가장 위대해지는 순간. 그 순간만이 나는 새가 될수도 있고, 인어가 되기도 한다.

 

그 과정을 처음 동물을 데려오던 두근거림으로 묘사하는 시의 전개는 특히 재밌다. 수많은 사육방법에 대한 조언들, 그들이 모여있는 새로운 세상-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아서 그들을 구원하러 가는 기쁨도 있는-으로의 여정, 처음 대면했을 때 느끼는 무게감,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나약한 생명을 다루는 두려움, 그 동거를 바라보는 불안한 눈빛들, 처음으로 낯선 생명과 잠들고 경험하는 묘한 꿈들...